실치는 한국인들에게 봄이면 잠시 동안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손님'으로 통하는 식재료입니다. 가늘고 투명한 외모 때문에 '실(실, thread)'과 '치어(새끼 물고기)'가 합쳐진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실체는 베도라치(흰배도라치)의 치어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실치와 뱅어를 같은 생선으로 오인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어종입니다. 다만 실치로 만든 포가 뱅어포로 널리 알려지면서 혼동이 생긴 경우입니다 .
실치의 몸길이는 고작 10~20mm에 불과하며, 살아있을 때는 몸 전체가 투명해서 까만 두 눈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 죽은 후에는 몸이 흰빛으로 변해 진짜 실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백어(白魚)'라는 시적인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 '백어'의 발음이 변해 '뱅어'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명도 전해집니다 .

🌊 실치의 짧은 제철과 주요 산지
실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매년 3월 중순부터 5월 초 또는 중순까지, 딱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만 실치를 회로 맛볼 수 있습니다 . 이 시기의 실치는 뼈가 연하고 내장이 작아 쓴맛이 없어 날것으로 먹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5월이 지나면 뼈가 억세지고 내장에서 쓴맛이 나기 시작해 회보다는 말리거나 볶아서 먹게 됩니다 .
실치의 대표적인 산지는 충청남도 당진, 보령, 태안, 서산 등 서해안 일대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진 장고항은 실치의 메카로 꼽히며, 매년 4월이면 '장고항 실치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미식가들이 �려듭니다 .
| 실체 | 베도라치(흰배도라치)의 치어 |
| 크기 | 10~20mm |
| 제철(회) | 3월 중순 ~ 5월 초/중순 (약 2개월) |
| 주요 산지 | 충남 당진, 보령, 태안, 서산 (특히 당진 장고항) |
🍽️ 실치를 먹는 다양한 방법
실치는 그 특성상 잡히자마자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까다로운 생선입니다. 그래서 가장 신선한 맛을 즐기려면 산지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
실치회
실치회는 한 마리씩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움큼씩 집어 초고추장 양념에 각종 채소와 함께 무쳐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오이, 당근, 깻잎, 양파 등을 넣고 버무리면 실치의 담백함과 채소의 아삭함이 조화를 이룹니다. 김에 싸서 먹으면 맛이 더욱 좋습니다 . 실치 자체는 강한 맛이 없어 양념 맛에 기대는 편이지만, 그 부드럽고 미끄덩한 식감은 봄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

실치국
실치회 못지않게 사랑받는 요리가 바로 실치국입니다. 된장을 푼 끓는 물에 시금치나 아욱 같은 봄나물을 넣고, 마지막에 실치를 퐁당 넣어 살짝 끓여내면 됩니다 . 실치가 너무 오래 익으면 형태가 흐트러지므로, 먹기 직전에 넣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고소하고, 실치는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 듯한 식감을 줍니다. 밥을 말아 먹으면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 별미입니다 .
실치전
실치전은 부침가루에 실치와 채소를 섞어 노릇노릇 부쳐내는 요리입니다. 오징어나 새우 대신 실치를 넣는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고소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 아이들 반찬으로도 좋습니다 .
실치볶음
제철이 지난 실치나 약간 덜 신선한 실치는 볶음으로 즐깁니다. 마른 팬에 실치를 살짝 볶아 수분을 날린 후, 간장 양념이나 고추장 양념에 호두나 잣 등 견과류를 넣고 함께 볶아내면 훌륭한 밑반찬이 됩니다 . 실치볶음은 멸치볶음보다 짠맛이 덜하고 고소함이 강해 아이들 간식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
뱅어포
5월 이후 잡히는 실치는 주로 말려서 뱅어포로 가공됩니다. 얇고 넓적하게 펴서 말린 뱅어포는 구워서 반찬으로 먹거나, 간장 양념을 발라 조리면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입니다. 사실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뱅어포'는 실치로 만든 '실치포'입니다 .
💪 실치의 영양과 효능
실치는 작은 몸집과 달리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식품입니다.
풍부한 칼슘
실치의 가장 큰 장점은 칼슘 함량입니다. 실치 100g당 무려 902mg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어, 멸치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를 자랑합니다 . 우유와 비교하면 약 9배에서 10배에 달하는 양입니다 . 뼈째로 먹기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골다공증을 예방하려는 중년 여성에게도 최고의 식품입니다. 햇볕에 말린 실치는 비타민D까지 활성화되어 칼슘 흡수를 더욱 도와줍니다 .
오메가-3와 핵산
실치는 등푸른 생선의 일종으로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 또한 핵산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세포 재생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혈관 질환 및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입니다 .
동의보감의 기록
동의보감에는 실치(뱅어)에 대해 "성질이 평(平)하고 독이 없으며, 음식을 맛나게 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실치를 건강식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 실치, 이렇게 고르고 보관하세요
신선한 실치를 고르는 법은 간단합니다. 빛깔이 투명하고 윤기가 흐르며,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실치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잡힌 지 1~2시간 안에 죽기 시작하므로, 산지 직송이 아니면 신선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만약 실치를 구입했다면,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 후 소분하여 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냉동한 실치는 국이나 전, 볶음 요리에 활용하면 됩니다 .
🌸 봄의 미식 여행, 실치 축제
실치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당진 장고항 실치축제가 최적의 장소입니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열리고 있는 이 축제에서는 현장에서 잡은 가장 신선한 실치회를 맛볼 수 있으며, 다양한 부대 행사도 즐길 수 있습니다 . 축제 기간은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순까지이니, 방문 전에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올 때, 잠시 스치는 인연 같아 더 애틋한 실치. 그 짧은 제철을 놓치지 않고 맛볼 수 있는 지혜가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올봄에는 당진 장고항으로 실치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